
이상옥은 『디카시와 철학』에서 디카시의 이론적 정초를 위해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본격적으로 호출한다. 그는 디카시를 사진과 문자의 결합이라는 형식적 특성에 머무르지 않고, 무의식, 욕망, 충동, 승화라는 정신분석 개념을 통해 심층화하려 한다.
이 구간에서 디카시의 사진 기호는 “충동이 처음 접촉한 외부 세계의 감각 흔적이며, 문자 기호는 그 충동이 의식의 언어로 굴절되어 나오는 상징화 결과다.”(98쪽)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텍스트를 면밀히 검토하면, 이상옥의 논의는 프로이트 이론을 이론적으로 접속시키는 데 실패한다. 문제는 해석의 차이가 아닌 개념의 작동 방식 자체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상옥은 먼저 프로이트의 철학적 의의를 요약하며 무의식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철학을 열었다”(95쪽).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닌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고 서술한다. 이어 무의식은 “꿈, 억압, 실수, 증상 등 이성의 틈새에서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심층”(95쪽)으로 설명한다. 이 서술 자체는 교과서적 요약에 가깝다. 문제는 이후 이 무의식 개념이 디카시 이론으로 이행하는 방식에 있다.
이상옥은 디카시 창작의 출발점을 ‘날시’라는 개념으로 설정한다. 그는 “시적 충동의 대상이 바로 날시이다. 이 날시는 디카시 창작의 선행 조건”(97쪽)이라고 말한다. 날시는 “창작 주체의 내면에서 불현듯 솟구치는 감정적·감각적 에너지”(97쪽)로 규정한다. 이상옥은 이를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충동 에너지, 즉 리비도의 표면화로 해석한다. 그는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면,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 충동의 표면화로 이해할 수 있다”(97쪽)고 단언한다.
이 지점에서 이미 중요한 전제를 삭제한다. 프로이트에게 무의식의 충동은 ‘표면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억압이며, 왜곡된 경로를 통해서만 나타난다. 꿈, 말실수, 증상은 모두 실패한 표현이다. 반면, 이상옥의 날시는 충동을 거의 손실 없이 감각적 형상으로 솟구치는 계기처럼 서술한다. 무의식은 저항하지 않는다. 억압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상옥은 이어 디카시의 형식 구조를 설명하면서 승화 개념을 전면에 배치한다. 그는 디카시를 “무의식이 외부 현실과 충돌하면서 생성하는 표현 욕망의 탈구다.”(97쪽)라고 말한다. 또 “프로이트적 의미에서 일종의 정신적 발설, 즉 리비도 에너지의 승화”(98쪽)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승화는 충동의 즉각적 변환을 가리킨다.
프로이트에게 승화는 즉각적 과정이 아니다. 승화는 억압된 욕망이 사회적으로 승인 가능한 대상으로 장기간 전치되는 복합적 경로이다. 이상옥은 이 점을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찰나의 감응이 시각적 형상으로 포착되고, 곧바로 문자 기호로 응고된다”(97쪽)고 말하며, 디카시의 즉시성을 강조한다. 이 즉시성은 승화의 핵심 조건인 지연과 매개를 제거한다. 그 결과 승화는 정신분석 개념이 아닌 단순한 미학적 전환의 이름으로 축소된다.
이상옥의 디카시 이론에서 창작 주체는 지나치게 능동적이다. 그는 디카시 창작자는 “날시를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로 응고시키면서 예술적 표현으로 전환한다.”(97쪽)고 말한다. 또 이 과정에서 창작자는 감각적 충동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시적 기호로 조직한다고 설명한다. 이 주체는 욕망을 조절하고, 형식을 선택하며, 결과를 관리한다. 이는 분열된 정신분석적 주체가 아니다. 자기 통제적인 미학적 주체이다.
이상옥이 제시한 작품 분석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반복한다. 이상옥은 특정 디카시 작품을 분석하며, 사진 속 사물과 장면을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상징”(99쪽)으로 해석한다. 밧줄, 배, 눈사람 등의 이미지는 억압된 성적 욕망과 소유 충동의 상징으로 독해한다. 이 해석은 분석자의 설명일 뿐이다. 무의식의 자기 작동이 아니다. 무의식은 해석하지 않는다. 해석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식의 질서 안에 들어온 것이다.
결국, 『디카시와 철학』에서 프로이트를 반복적으로 호출하지만, 이상옥 스스로 이론적 긴장을 제거한다. 억압은 사라진다. 저항은 작동하지 않는다. 증상은 미학으로 대체한다. 무의식은 깊이를 잃고, 승화는 속도를 얻는다. 이 결합은 보완이 아닌 탈색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오독이 아니다. 이는 비정합이다. 개념들을 인용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프로이트 이론이 없어도 디카시 설명은 그대로 작동한다. 프로이트를 제거할 때 디카시는 더 명확해진다. 사진과 언어의 즉각적 결합이라는 디카시의 미학은 정신분석의 느린 이론과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상옥의 디카시 철학은 프로이트를 통해 심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분석의 언어를 빌려 디카시를 설명하지만, 정신분석의 사유를 감당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디카시와 프로이트의 결합은 이론적 확장이 아닌 개념적 과잉으로 남는다. 이는 수정 가능한 해석 차원이 아닌 구조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비정합성이다.
지금까지 무의식 개념을 감정 표현 이론으로 축소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표면화되지 않는 구조이다. 디카시 담론은 이를 즉각적 표현으로 오해한다. 그 결과 정신분석은 설명 심리학으로 전락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