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33개국 정부가 잇달아 시민들에게 비상식량과 물, 현금, 라디오를 갖춰 두라고 권하고 있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해커들이 슈퍼마켓 냉동고를 원격으로 조작해 섭씨 50도로 데우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다. "정부는 우리가 모르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장바구니 앞에서 번지는 이 물음은 전쟁의 공포보다, 디지털에 기댄 일상이 얼마나 쉽게 멈출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72시간에서 10일까지, 각국의 '생존 시계'
유럽연합은 2025년 3월 '대비 연합 전략'을 내놓고 시민들에게 최소 72시간을 스스로 버틸 준비를 권했다. 이후 각국의 안내가 잇따랐고, 국제 언론은 비축을 권고한 나라를 33개국으로 집계했다.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영국·프랑스·캐나다·일본은 72시간, 스웨덴·노르웨이는 약 1주일을 권한다. 독일은 최대 10일을 제시하며, 연방재난청 점검표에는 ▶식량과 ▶물 외에 ▶현금과 ▶건전지 라디오도 들어 있다. 미국은 며칠분을 갖추라고 한다.
3주 간격으로 되풀이된 냉장고 해킹
불안에 불을 지핀 것은 슈퍼마켓 냉장 설비 해킹이다. 10월 11일 밤 프랑스에서 최대 700곳의 설비가 원격으로 조작되어 일부 냉장고 온도가 50도까지 치솟았다. 3주 뒤인 11월 2일 밤사이 벨기에, 스웨덴, 아일랜드, 네덜란드, 에스토니아 등에서 같은 수법이 되풀이되었다. 표적은 보안 업데이트가 끊긴 덴마크 댄포스의 구형 제어기였다. 배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벨기에 연방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스웨덴 국가사이버보안센터는 북유럽과 유럽 기관들에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셰보·호버·노르망디
스웨덴 셰보의 한 ICA 매장은 냉장고와 냉동고 온도가 50도로 바뀌었다고 알렸다. 벨기에 호버의 한 정육점은 고기 약 1만 5,000유로어치를 버렸고, 아일랜드 슈퍼밸류는 매장 13곳에서 냉장·냉동 식품을 거둬들였다. 벨기에 사이버보안센터는 배후가 끝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정부는 "비상 상황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우리가 모르는 무엇을 아느냐는 물음이 번진다.
공포 대신 준비
전문가들은 이를 3차 대전의 전조가 아니라 사회의 회복력을 키우는 작업으로 읽는다. 다만 에너지와 식량, 통신이 디지털망에 기댈수록 낡은 제어기 하나가 식탁을 흔들 수 있다. 공포 대신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